공지사항
[균도와세상걷기2]작은 유등에 소원을 적어 띄웠다 _11
- 관리자
- Oct 12, 2011
- 1447
- 작은 유등에 소원을 적어 띄웠다
균도와 걷는 세상이야기 11
여덟째날 이야기(10월7일) 진주반성면~진주 촉석루
집을 떠나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길을 걸었다.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마침 진주에는 유등 축제를 한다. 오늘 지나갈 길은 균도 할아버지와 내가 몇 달간 같이 산 적이 있는 곳이다. 할아버지의 일을 도와준다는 명목하에 군에 가기 전 얼마간 이곳 현장에 있었다. 아마 그때 내 나이가 지금 균도보다 조금 더 들어서 오늘처럼 묘한 기분을 느낀다.
길을 걸으며 균도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알아듣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나의 기억을 균도에게 전해주려고 노력한다. 저 먼 곳에 보이는 곳은 바뀌어 있지만, 나의 기억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다.
가끔 거울을 보면 그곳에는 나의 아버지가 서 있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현재의 나의 모습이지만, 아버지가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나의 모습에서 아버지가 보이고 균도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보인다.
난 장애인의 가족이다. 그렇지만 난 장애인이 아니다. 장애인의 아버지 모습도 나에게 있지만, 난 정신장애인과 관련이 깊다.
균도 할아버지는 아픈 상처로 평생을 살았다. 균도 할아버지는 지금 서울 수유리 419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계신다. 4·19혁명 당시 이승만 정권에 항거하다 머리에 총상을 입고 평생 편집증으로 살았다.
평소 생활인이었지만, 가정에서는 결코 순하신 분이 아니었다. 세월이 지난 다음 난 그분의 사랑이라고 이해했지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폭력이 난무한 가정, 우리는 그분의 상처로 말미암아 그렇게 고통스러웠다.
난 그렇게 소년, 청년기를 겪고 살았다. 아버지는 일찍 중풍이 와서 평생 집에 계시다가, 조금 완쾌가 되어 이곳 진주에서 잠시 일할 때 나랑 같이 있어서 이곳이 나에게 기억이 깊다. 그렇게 병마를 이겨 내신 분이 중풍을 세 번 맞으시고 결국 뇌출혈로 보훈병원에서 돌아가셨다. 항상 진주라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내 자라던 시절은 아버지랑 여행의 기억이 없는 세대다. 그래서 난 균도랑 많은 기억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위에서 받는 장애인가족의 애환, 그리고 밑에서 받는 장애인 가족의 아픔, 난 그것을 둘 다 받고 산다. 그렇지만 난 행복하다. 추억이 있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
촉석루에서 유등을 균도와 함께 쳐다봤다. 내 눈에 아름다움이 균도에게도 아름답게 보였으리라 생각된다. 세월이 지난 다음 균도도 이곳을 아버지와 같이 있던 기억으로 각인되길 바란다.
난 이런 추억여행을 균도와 같이 떠나왔다. 작은 유등에 균도와 나의 소원을 적어 강물에 띄어 보냈다. 균도는 균도와 세상걷기 시즌2 화이팅!!!이라고 적었다. 나는 발달장애인법 제정, 기초법 부양의무제 폐지를 적어 강물로 보냈다.
떠나가는 유등을 보며 우리는 둘이 두 손을 들고 소리 높여 외친다. 정부는 발달장애인법 제정하라. 제정하라. 제정하라!!! 기초법 부양의무제 폐지하라. 폐지하라. 폐지하라!!!
우리는 이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내일도 열심히 걸을 것이다. 우리가 많은 힘이 되지는 않겠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이것을 이야기하면서 먼 길을 돌아가면서 노래할 것이다. 오늘도 균도와 세상걷기는 우리의 추억으로 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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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섭 부산장애인부모회 기장해운대지회장